여자들이 살졌음을 느낄때..뚱뚱한 게 죄? 외모지상주의의 합리화

여자들이 살쪘다고 느낄 때 바지 사이즈가 안맞아 단추 잠그려고 애쓰는

순간 이라고 합니다. 여자들이 살쪘다고 느낄 때 오랬만에 입어본 청바지, 헐렁했던 

바지 단추가 잠기질 않았다는 살쪘다고 느낄 때 허리둘레가 엉덩이 둘레의 90%를 넘으면 복부비만으로 문제될 수치다. 100%를 넘으면 건강이나 성기능에 상당히 심각한 위험신호 라고 하는 살쪘다고 느낄 때 복부비만은 건강의 적신호일 뿐 아니라, 남성호르몬의 생산을 떨어뜨리는 위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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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게 죄? - 외모지상주의의 불편한 합리화

어떻게 생긴 외모가 잘 생긴 외모인지에 대한 기준은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서로 달랐지만 어떠한 집단이든 한 인간이 "잘 생긴" 이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속되어 왔다. 이것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확인되는 경향으로, 어떠한 사고와 취향의 차이라기보다 생물체로서의 본능에 관계된다.

 패럴리 형제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성격 나쁜 여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생긴 여자는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을 철저히 신뢰하는 한 남자와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이성으로부터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한 여자가 연인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그린 로멘틱 코미디물이다. 

 영화의 제목이나 대강의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가 전하고 있는 메세지는 "외모만으로 이성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 이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러한 결말이 지나치게 이상화된 결말이라고 생각할 듯 싶다. 하긴 외모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나조차도 솔직히 말해 비만이라고 할 정도로 뚱뚱한 이성에게는 매력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외모를 이성 선택의 큰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외모지상주의'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여자는 외모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에게 "그보다는 성격이 중요하지."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외모 역시 이성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이고, 그것을 중시하느냐 아니냐는 개인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선택하는 데서의 "외모지상주의"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성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의 "외모지상주의"를 넘어서 "외모로써 사람을 평가하고 못생긴 여성을 비하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못생긴 외모"의 문제를 당사자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외모를 비하하는 자신들의 태도를 정당화, 합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위와 같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시각은 뚱뚱한 여성에게 비하와 모욕을 가한 남성들을 향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는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 환영받으려면, 그들의 태도를 원망하기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맞는 예쁘고 날씬한 여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라는 것의 목적이 "뚱뚱한 여성이 노력과 인내를 통해 예쁘고 날씬한 여성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일반 남성들에게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물론 예로 든 여성들이, "제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고백한 남자에게 거절당했다." 또는 "뚱뚱해졌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와 해어졌어요"라고 호소한다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사실, 성격을 보고 당신을 좋아해 줄 수도 있겠지만 뚱뚱한 여자에게는 남자들이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자로서 보이고 싶다면 다이어트를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가 가진 문제는 '여성'이 아닌 한 '인간'의 가치마저 외모로서 평가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일부겠지만, 외모지상주의에 있어서 남성들이 범하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뚱뚱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자기관리를 안 하는 사람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성을 볼 때, 외모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그런 얘기들을 안 듣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라는 논리이다.

 비만인 여성 가운데 과식이나 생활 습관으로 인한 체중 증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체질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살이 찌는 사람 또한 있으며, 어렵게 살을 빼더라도 살이 다시 찌기 쉬운 게 사실이다. 또한 체중 감량을 하는 과정또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하므로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 의지의 문재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가 가져온 오류가 다름 아니다.

 또 하나의 논리가 가지는 문제는 이성 관계에 있어서 '이성으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배제시킬 권리'를 그 이외의 영역까지 확대 적용하는 데서 오는 비하와 모욕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성 간이 아닌 동성이나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못생긴 사람에 비해 잘생긴 사람이 비교 우위를 가지는 것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못생긴 사람에 대한 비하를 가능케 하는 논리가 될 수는 없다.그들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며, 이성 관계가 아닌 부분에서 외모로 비하를 당해야 할 근거는 없다.

 어떤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하라" 라고 권유한다면 그것은 해당 여성이 "나를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야지"와 같은 생각에서 본인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지 외부인이 비난하고 강요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타인이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여성이 예쁘고 날씬할 필요는 없으므로.

   한동안 떠들썩했던 "루저" 논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출연자가 단순히 "저는 키 작은 남자보다 180cm 이상인 남자가 좋아요." 라고 자신의 취향만을 밝히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그러한 비난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공격을 받은 것은 선천적인 조건인 "키" 라는 것을 가지고,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회의 "루저"로 칭한 데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성을 볼 때 하나의 개인적 기준에 불과"한 "외모" 라는 조건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능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언급한 것이다. 가십거리에 뷸과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키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이는 "뚱뚱한 여자"에게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모"라는 건 어디까지나 이성과의 관계에서만 고려해야 할 부분이고 일반적 관계에서 일정 부분 인정된다 하더라도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어드벤티지가 되어야지 그것이 사람의 능력이나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들이 "뚱뚱해서" 모욕을 당하는 건 그들의 죄가 아니다. 우리의 시선이 잘못된 것일 뿐.

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FC Seoul 

  




Posted by doc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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